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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판 썰BOX/네이트판 [레전드]썰

[네이트판 결시친] 1편)나의 개명스토리

by 이야기NOW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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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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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쓴 개명으로 달라진 내 20대 후반 이야기 시리즈를 읽고 제 개명스토리도 써 볼까합니다.

친구 글에 댓글을 보니 주작이라는 댓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굳이 주작글을 내 시간 써가며 써서 올린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겪었던 일을 재미 삼아 써서 올리는 거니 예능을 다큐라 생각하지 마시고 주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냥 읽지 마시고 댓글도 자제 부탁드려요^^

 

 

그리고 저는 개명한지 5년이 넘었고 지방 토박이이고 서울 지리도 잘 모르며, 점집은 개명하기 몇 년 전에 친구 따라 한번 가봤고 그 뒤로 한번 더 방문하기는 했으나 그 조차도 몇 년 전이라 정확한 위치나 연락처는 모르는 상태라서 점집 정보 공유가 힘든 점 이해해주세요^^

 

 

저는 짧고 굵게 2편으로 나눠서 굵직한 이야기만 써드릴게요~!!

그럼 본격적으로 제 개명 스토리 시작해보렵니다!!

개명스토리 시작은 제가 처음 양재동 점집을 방문한 그 시점으로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처음방문부터 개명을 생각하고 양재동 점집을 방문한 건 아니에요~

개명 글 쓴 친구를 **이라고 칭할게요~

**이가 용한 점집을 알아냈다며 본인도 몇 번 다녀왔다고 하길래 저랑도 같이 가자며 날을 잡았어요~

친구 글을 잘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친구는 인천에 살고 있다는 거 아실거에요.

저는 그 당시 광주에 살아서 친구랑 점집 가기로 한 날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갔고 양재역 몇 번 출구 앞에서 만나서 그 점집을 찾아갔어요.

 

 

점집이라하면 기와집에 법당이 있고 눈매가 매서운 무당이 앉아 있을 거 같았는데 막상 제가 도착한 점집은 아파트에 젊고 온화하게 생긴 보살님이 앉아계셨어요.

보살님 뒤로는 불상이 올라가진 제단과 제단에는 과일, 한과 등 일반 제단에 올라가는 것들과 어른 한복, 어린이 한복이 걸려있었던 거 같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애기들 장난감과 뽀로로초코케이크였어요.

할머니신과 동자신을 받았다고 하더니 그래서 애기들 장난감이랑 뽀로로초코케이크가 있구나 싶었어요.

이름과 생시를 말씀드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보살님의 첫마디가

“기가 너무 쎄!! 기 좀 죽이고 살아!!”였고

“웬만한 남자보다 기가 쎄~!! 그래서 남자답지못한 찌질한 남자는 남자로도 안 봐!!”라고 했어요.

평상시 여자한테는 져도 남자한테는 절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에 기 쎄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무당한테 기쎄다는 소리 들으니 정말 기가 쎄긴 쎈가 보다 싶었어요.

그리고 나온 점사는 “선비직업 가질 사주야~나라 녹으로 먹고 살 사주~”라고 했어요.

경찰이 꿈이였고 경찰행정학과 졸업하고 경찰시험도 준비해서 시험도 봤지만 일찍 포기하고 직장생활하던 저는 그 점사도 그냥 남의이야기 듣듯 들었어요.

첫방문때는 기세다는 점사와 선비직업 가질 사주라는거 이외엔 별다른 점사는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랑 한번 다녀와서 1~2년 지나서 **이는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가고 저 혼자 한번 더 다녀왔어요.

그땐 좋아하던 남자 때문에 속 앓이 하던때라 연애, 결혼운 위주로 점사를 부탁드렸어요.

그랬더니 대뜸 “이 이름으로 30대 중반전에 결혼하면 2번 갈 이름이야~자기 잘못은 아니고 사별하거나 상대방이 외도해서 2번 갈 이름이니까 이름 바꾸는 거 생각해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지금 이 이름이 좋은 남자 붙는 이름이 아니야~자기 자궁 기운이 쎄서 불순한 의도로 자기한테 접근하는 남자들이 많아”라고 했어요.

근데 전 이런거에 막 맹신하고 그런 타입은 아니라서 그냥 듣고 흘려버리자 생각했어요.

점사가 끝나고 나가려고 일어서는 순간 갑자기 보살님 말투가 어린애들 혀짧은 소리 하듯 바뀌면서

“음~~이모는 연하랑 살겠다!!” 이러길래 “네??” 했더니 “이모는 연하랑 살아~”이러더라구요.


저는 남동생이 있어서 연하는 남자로도 안 보고 연상을 좋아해서 연상을 만날 생각하고 살았던지라 그 말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내려왔어요.

 

 

그 뒤로는 양재동 점집을 방문하지는 않았고 그냥저냥 일에 치여 살았어요.

제가 27살이였던 2013년,그때는 제가 삼재가 들어오는 해였고 하나뿐인 동생이 갑자기 하늘로 먼저 가버리게 되었어요.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저희 부모님은 장례 기간 내내 슬픔과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시고 그런 부모님을 대신해 저는 상주가 되었고 동생장례를 치르고 동생을 잘 보냈어요.

그때 당시 인천에서 퇴근하자마자 광주까지 달려와 준 **이..아직도 너무 고마워!!

부모님은 동생을 보내고 저를 혼자 광주에 둘 수 없어 직장생활 다 정리하고 부모님이랑 같이 시골에서 살자고 하셔서 직장 퇴사하고 살던 집도 정리 후 고향으로 내려와서 몇 달 쉬고 그 다음해인 2014년 관공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시골이라 출,퇴근만 하면서 일상생활을 하고있던 어느날 주변 친구들에게 ’##이라는 친구가 널 마음에 들어한다며 네 연락처를 물어본다고 만나보라‘는 연락을 받게 되고 저는 그 시점에 첫사랑 때문에 속 앓이하던 때라 그 친구에게는 큰 관심은 없었어요.

근데 ##이는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꽃바구니 보내고 주변 친구들하고 약속 잡아서 그 자리에 저도 나오게끔 만들어서 만나려고 하고 데이트하자고 직접적으로 연락도 오고 했어요.

몇 달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만나봐도 괜찮겠다싶어서 마음을 열고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어요.

근데 몇 달이 지나니 결국 본인 스타일이 나오더라구요.

금사빠에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저 좋다고 쫓아다니느라 뒷전이였던 지인들 모임이 어느 순간 저를 만나는 횟수보다 많아졌고 둘이서 보내던 시간들도 점점 가까운 친구들과 같이 보게 되는 횟수가 늘어나더라구요.

그럴수록 저는 서운함이 많아졌고 싸우는 빈도수도 많아졌는데 그럴때마다 ##이는 싸우기 싫다는 핑계로 입을 다물고 동굴로 들어가는 스타일이였어요.

저랑은 연애관이 다르고 저는 점점 지쳐가면서 갑과을의 연애관계를 어찌어찌 유지하다가 2014년 말쯤 크게 싸우고 결국 헤어졌어요.

 

 

동생 보낸 아픔이 아물지도 않았는데 사람으로 상처받은것도 커서 많이 힘들더라구요.

헤어지고 나서도 저는 ##이를 놓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한달이 넘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퇴근하면 집에 와서 이불 뒤집어쓰고 밤새 울기도 하고 정신 못 차릴 만큼 아파서 두 번이나 부모님등에 업혀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어요.

살도 10kg정도 빠져서 다들 안타까워 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두 번째 병원에 실려가서  누워있는데 부모님이 눈물을 보이시더라구요.

“너까지 잘못되면 엄마,아빠는 못산다“고 하시면서 우시는데 그때 마음을 먹었어요~

’우리 부모님까지 눈물보이게 하는 놈이라면 더 이상 내가 감정낭비할 필요가 없다! 정신차리고 똑디 살아보자!!‘ 라고

그 이후 정신차리고 훌훌털고 일어나서 씩씩하게 생활을 하고 활동하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지라 28살 늦은 나이에 태권도 도장 등록해서 태권도도 시작했어요.

태권도 시작과 동시에 뭔가 내 인생을 바꿀만한 전환점을 찾다가 **이가 개명한게 생각나서 개명을 해보자 생각했고 약간은 보수적인 부모님이라 개명에 대한 제 의견을 꺼냈을 때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흔쾌히 허락하셔서 **이의 조언을 듣고 본격적인 개명 준비를 시작했어요!!

 

 

여기까지가 제가 개명을 마음먹고 준비하게 된 계기였구요.

2편에서는 개명준비과정,그에 얽힌 스토리와 주작이 아니라는것도 인증해서 올릴게요!!

 

 

 

⬇️⬇️⬇️다음편에서 계속⬇️⬇️⬇️

[네이트판 결시친] 2편)나의 개명 스토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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