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남들보다 많이 늦게 시작한 첫 연애
다 좋았어요
모든게 다 처음이였고 너무 좋아했고 다 퍼줬던거 같아요
물론 남친도 저에게 그랬구요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불안한 마음도 커졌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됐고
만난지 2년 좀 안됐을때 남친에게 제 모든 상황을 오픈했어요
오랜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제 상황을 정말 처음으로 다 털어놨어요
어릴적 부모님의 이혼과 성인이 된 후 쌍둥이 오빠와 절연하고 사는것까지요
(전자는 제가 어찌 할수 없는 부분이고 후자는 쌍둥이오빠가 저를 왕따시켰던 제 중학교 동창과 결혼했기 때문이에요)
나는 오빠를 정말 좋아해서 내 모든 상황을 다 털어놓는다고,
오빠가 날 떠난다고 해도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말하면서 울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오빠가 나한테 힘든 상황속에서도 너 참 열심히 살았구나 애썼구나 그렇게 말해주길 바랬던 것 같아요
남친은 늘 저에게 그랬거든요
너는 참 좋은 집안에서 사랑 듬뿍 받고 자란 공주님 같다고
항상 잘 웃고 밝고 긍정적이여서 같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자주 말했어요
근데 제 상황을 다 오픈했더니, 그 모든것들이 연기고 거짓이라고 생각했나봐요
나는 오빠랑 있으면서 거짓말 한적은 한번도 없다고 그랬어요
때론 너무 힘들어서 죽을거 같아도 오빠 얼굴보면 다 잊혀졌고
같이 있으면 즐거워서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단 한번도 거짓이나 연기한적은 없다고 했어요
실제로 그랬거든요
제가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건 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귀하게 자란 공주님인척 연기 한적은 없어요
화목한 집안에서 사랑 듬뿍 받고 자랐을거 같다는 말에
그저 씁쓸히 웃으면서 아니야~ 했던거,
강하게 부정하지 않았던거?
그게 거짓말이라면 유일한 거짓말이였겠네요
남친은 이해 못하더라구요
부모님의 이혼도 피를 나눈 형제와 절연하고 사는것도
저를 왕따 시킨 여자와 결혼한 형제를 그럼 어떻게 받아줘야하냐고 허탈하게 물으니
자기였어도 화는 났을거 같은데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와 절연할 정도면 저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대요
자기 집안은 화목하고 형제들끼리도 사이가 좋아서 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대요
저에게 생각한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그만하자고 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울면서 말하다가 그냥 그대로 택시 잡아타고 집에 왔어요
내심 잡아주길 기다렸지만 남친은 그자리 그대로 있더라구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요
그날 바로 폰 번호 바꾸고 집 계약도 반년이 남았지만 주인분께 울면서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그 주에 바로 원룸도 옮겼고, 직장도 바꾸고, 두달간 정말 바쁘게 살았던거 같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아직도 못 잊긴 했어요
멍하니 있으면 자꾸 생각나고
옮긴 회사가 시내쪽이라 퇴근할때마다 같이 다녔던 곳들이 보여서 울면서 퇴근할때도 많았어요
마스크 쓰고 다니는게 참 다행이다 싶을정도로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어제 회사에 있는데 전화가 왔더라구요
지운 번호지만 머릿속에선 지우지 못해서 번호 뜨자마자 알았어요
두번 전화 오는거 다 안받고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리고 내일이 주말이라 퇴근후 집에서 혼술하는데
또 전화가 오더라구요
술기운에 전화를 받으니 받자마자 제 이름부르며 제가 맞냐고 묻더라구요
응
겨우 한단어 내뱉기가 어찌나 힘든지 눈물 꾹 참고 대답만 한번 했어요
남친
아니 전남친이 그러네요
한번만 만나달라고
얼굴 보고 얘기 좀 하자고
술이 좀 됐던 터라 저도 모르게 알겠다고 대답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전남친이 장문의 문자를 보내놨네요
제 상황 이제는 다 이해한다고
자기가 다 안고가겠다고
결혼하자고
만나서 제대로 프로포즈 하겠다고
한시도 저를 잊은적 없고 제가 펑펑 울면서 힘없이 멀어지던 그 뒷모습이 꿈에 자꾸 나와서 후회했대요
그때 저를 붙잡고 안아줄걸
다 괜찮다고 말해줄걸
제가 그 상황들을 털어놓기까지 얼마나 자존심을 다 버리고 또 자신을 믿고 얘기했을지
자기가 그 마음을 이해했어야했다며 너무 미안하대요
미안해서 염치없어서 연락도 안하려다가 제 뒷모습이 눈에 밟혀서 평생을 후회할거 같아서 용기내보는거래요
꼭 오늘 오후에 단골이였던 카페에서 만나자고 기다린다고 그렇게 문자가 왔네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 못 잊은것도 사실이고 좋아하는 마음도 남아있어요
근데 이상하게 만나러 가고 싶지가 않네요
저에게 얼마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문자를 보면 다 느껴지는데
이상하게 제 마음에는 안 와닿아요
왜 내가 만나겠다고 대답을 했는지 후회가 되고 이대로 그냥 수신 차단하고 무시하는게 맞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3시에 만나기로 했고 사실 씻고 화장은 한 상태에요
안 늦으려면 지금 나가야하는데
무슨 마음으로 준비를 한건지, 무슨 마음으로 준비 다 해놓고 나가기가 싫은건지 모르겠어요
씻고 머리말리고 화장하면서도 계속 나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주 작게
그래도 얼굴만 잠깐 보고 오면 안될까 하는 그런 생각도 있어요
제가 무슨 마음인지 저도 모르겠어서 그냥 주절주절 적어봐요
글을 쭈욱 적고 나니 나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네요
이대로 그냥 친한 언니 집으로 갈까 싶어서 방금 집에가도 되냐고 톡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없네요
언니가 맛있는거 해줄테니 놀러오라고 답장 해줬으면 좋겠어요
만나러가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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