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주변에 조언이나 위로를 얻을 어른이 없어 처음으로 이곳에 글 남기게 되었습니다. 방탈은 죄송해요....
저는 26살 9급 공무원입니다. 여자고 작년에 합격했어요.
사실 저는 예체능 쪽에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원하는 학과로 진학했지만 예술이라는 게 돈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졸업 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바로 공무원 시험에 뛰어 들었습니다.
다행히 합격했고 적은 월급이지만 안정성 때문에 지금 이 선택은 만족스럽습니다.
저희 집은 가난합니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월세에 살고 있어요.
월세는 다달이 40정도 나가고 부모님 노후 준비는 전혀 안 되어있습니다.
한 살 아래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자기 밥벌이는 하고 있어요.
중견기업 다니고 결혼도 하고 싶어 합니다.
저는 결혼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저희 집 배경에 결혼은 사치고 제 월급에 연애도 사치 같아요.... (공무원 월급 비하가 아니라, 앞으로 저희 집 월세나 생활비도 제가 내야할테니까요)
부모님은 퇴직하시면 제가 먹여 살릴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스무살때부터 안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때마다 장학금도 타고, 조금 남는 알바비로 부모님 용돈도 드리며 살았습니다.
엄마는 제가 마지막으로 했던 아르바이트 퇴직금도 달라고하셨었어요.
부모님이 일하는데 왜 집이 가난하냐고 물으실텐데 아빠가 도박에 밖으로 나도느라 모아두신 돈이 전혀 없어요.
아빠 사업 때문에 부모님 앞으로 빚은 6천정도 있어요.
저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근데 정말 사회에 나와보고 주변에서 집 값이나 결혼 얘기를 하다보니 부모님 노후준비가 안된 집이 많지 않더라구요.
저희집은 앞으로도 가난하겠죠?
제가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을 택한 이유는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거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근데 사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눈물이 난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모든게 무기력해요.
출근도 하고 밥도 먹고 씻고 잘 생활은 하는데 문득문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어요.
큰 사건 없이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면 그게 행복이다, 감사해라. 라는 말도 들었었는데 아침에 눈 뜨는게 싫네요.
회사에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거나 일이 안 맞거나 그런건 아니에요.
근데 죽으면 편할 것 같아요.
잠든 상태 그대로 내가 사라지는거라면 저는 언젠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해요.
결혼은 예전부터 생각이 없었고, 그냥 혼자 회사다니면서 독립해서 강아지랑 오순도순 먹고 사는게 제 꿈입니다.
그것도 어렵겠죠?
나이들어 부모님 아프시면 병원비에 뭐에 그냥 미래가 두렵고 이렇게 사는게 맞는지.... 그냥 푸념이네요.
주변 친구들보면 다들 행복해보여서 문득문득 눈물이나요.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거나 저희집 형편을 아는 친구는 없어요. (주변에 정말 믿었던 친구들에게 마음을 터놓았던적도 있지만 결국 상처만 받더라구요. 인생은 혼자라는걸 20대 중반에도 잘 알고있어요...)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은 제가 숨기고 싶어하는게 많다는 걸 알고 있을거에요.
금전적으로 가난하다고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것도 아니에요. 뻑하면 집 때려부수고, 초등학교 때 따돌림 당한다고 집 와서 우니까 시끄럽다고 욕하던 아빠를 보며 자랐어요.
돈 때문에 두 분이 싸우는건 일상이였고... 동생과 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얌전해지셨지만요.
글이 많이 두서 없죠??
그냥 다들 인생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는게 뭔지, 어떤 낙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시는지 궁금해서 글 올려봐요.
형편없는 하소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제법 차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추가
글쓴이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댓글 달아주시고 조언해 주셨네요.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중에 분수도 모르고 예체능 했냐, 공부나 했어야 한다 말씀하신 분 계셨는데 저 공부 손 놓은 적 없어요.
학창 시절 내내 성적 전교권이었고 대학 진학 후에도 계속 장학금 받았습니다...
학교까지 밝히면 가까운 지인들이 알아볼 것 같아서 적지는 못하지만 좋은 학교 나왔어요....
분수도 모르고 허망하게 꿈이나 쫓는 사람으로 보인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한 마음에 몇 자 적습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지금이라도 제 꿈 버리고 현실과 타협했으니까 됐다고 생각해요.
양심 있으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 도피성으로 남자 만나지 말라는 댓글도 있네요.
결혼 꿈꾼 적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고요.
댓글에 외모 얘기하시는 분들 계신데 못나지 않았습니다...
사정 모르는 주변에서 들어오는 소개팅도 다 거절하고 있고요, 대학 시절 연애 안 하는 저에게 성 정체성을 물어본다거나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분들 많았어요.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남자에게 관심도 없어요. 결혼도요.
제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활발하고 사회성이 좋다면 이따위 생각도 안 할거다, 사회성 결여로 보인다는 댓글도 봤습니다.
저 활발하고 사회성 좋아요.
지인들은 제가 그늘이 있는지 우울증이 있는지 전혀 몰라요.
감사하게도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 내내 사장님이 잘 웃고 밝다며 좋아해주셨어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그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겉으로 티가 날거라 생각하시는데 아닙니다.
제가 살면서 롤모델은 없는데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 하는 유형이 하나 있어요.
이런 댓글, 저희 부모님 같은 분들이요.
모든지 네 탓이야.
네가 나약해서 그래.
자신만의 생각과 시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댓글 보며 깨달은 건데 어릴 때부터 가스라이팅 당한 거 맞습니다.
이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요...
고등학생 때 아빠와 싸운 뒤에 저와 단둘이 남으면 내가 살아서 뭐 하냐, 죽어버리겠다며 제 앞에서 락스통 들고 우는 엄마 보며 자랐어요.
근데도 내가 엄마 행복하게 해드려야지 이런 미련한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절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멍청하게도 이제야 깨달았네요.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제 인생 살아보겠습니다.
스물여섯 살인데도 아직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요.
앞으로는 저 자신부터 제대로 사랑하고 제 인생 제대로 설계해보겠습니다.
사실 글이 너무 이슈가 돼서 누가 알아볼까 겁나고 삭제할까 싶은데... 댓글들에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대로 두고 읽고 싶어요.
얼굴도 모르는 저한테 너무 따뜻한 조언이 많네요.
몇몇 댓글에 한참을 울었어요.
쓴소리, 응원 모두 감사합니다.
나쁜 생각 안 하고 독립해서 행복해져 볼게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연말 잘 마무리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