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혹시 전편을 읽으시지 않은분은 읽고 오시길 추천합니다.
당신께 알려주고 싶은 어머니의 부동산 투자노트 - 주택편(별제 : 엄마백서 주택편)
1999년 초 고위공직자를 눈앞에 둔 어머니가 과로와 불면증으로 쓰러지십니다.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유학 예정이었던 저는 유학을 포기하게 되지요. 2월에 제대를하고 어머니의 병간호를 3개월정도 하니 많이 회복되셨고 좀 더 쉬시다가 복직을 하십니다. 몇개월쯤 근무를 하시는데 예전같은 열정과 체력으로 근무를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명퇴를 결심하십니다. 성과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윗사람으로 욕먹고 싶으시진 않았다고 하셨지요.
2000년 즈음에 퇴직하시고 어머니의 제 2의 인생인 임대사업자 인생이 시작됩니다. 퇴직하고 나니 시간은 남고 머리는 그대로 이신지라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배움을 계속하면서 여행도다니고 휴식을 취하던 시기인 2002년쯤 외국인 렌트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지인이 투자권유를 하게 됩니다. 그 외국인 렌트사업은 대지지분, 건물지분을 나눠서 투자자를 모집 중이었고 투자 후 개발이 완료되면 외국인에게 렌트하여 수익에 따른 배당을 받는 형태의 비지니스였지요. 꼼꼼히 따져보신 후 대지지분쪽에 1억 정도를 투자합니다. 중도에 사업이 좌초 되더라도 땅은 남는다는 생각 때문이셨죠.
처음하시는 투자라.. 가진돈 중 일부만 시험삼아 해 보신거고 세계화, 글로벌화로 외국인 입국 거주수요가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투자를 결심하시게 된거죠. 투자자 모집이 완료되고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될 때 쯤 그러니까 어머니가 투자하신지 6개월쯤 되었을때 건물지분에 투자한 다른 투자자로부터 대지지분을 3천만원 프리미엄받고 넘기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어머니는 약간 불안하기도 한 마음에 1.3억에 지분을 넘기게 되지요. 6개월에 수익률이 30프로인거였죠.
이렇게 부동산 투자로 돈을 쉽게? 벌게되자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공부에 박차를 가하십니다. 건물을 살 여력은 안되니 경기를 좀 덜타는 오피스텔, 오피스 위주로 소위 말하는 임장을 다니시게 되지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찍은 오피스텔을 일정기간동안 시세 확인을 하며 올바른 판단을 했는지 검증하는 시간을 가지십니다. 이런 기간을 1년 넘게 가져갑니다.
기존에 생각한대로 수출도 늘고 한국이 점점 세계화의 중심에 서게 되는 시기 (철강,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의 호황)인 2004년도 즈음에 인천 공항철도가 공덕역과 서울역 등으로 연결된다는 정보를 캐치하신 어머니는 드디어 실제 행동에 돌입하시게되죠. 공덕역에 하나당 1억씩으로 오피스텔 3개를 분양 받게됩니다. 세계화 기조에서 공항과의 접근성은 큰 메리트로 다가왔거든요. 그리고 항상 사업가를 꿈꾸던 아들을 위해 나중에 사업을 할 30평 오피스를 광화문에 2.5억을 들여 분양 받습니다. 세계화에 맞는 여행사들이 광화문에 밀집되어 있는걸 아셔서 여행사에 임대할 목적으로요.
이렇게 어머니는 오피스와 오피스텔 총 4채를 가진 임대사업자가 됩니다. 분양받은 오피스텔은 공덕역 입구에서 열걸음을 뛰면 오피스텔의 입구인 입지가 너무 좋은 곳이었습니다. 한번도 공실없이 45만원에서 시작해서 80만원까지 2년마다 거의 5만원씩 월세를 인상하게 됩니다. 광화문의 오피스는 어머니의 입맛에 딱 맞게 여행사에 임대를 했습니다. 100만원 정도에서 시작해서 2년마다 10만원씩 인상하기도 했지요. 이 여행사는 운좋게도 승승장구했습니다. 이렇게 매달 벌어들이는 월세와 두분의 공무원 연금 중 한명분을 5년간 추가로 저축합니다. 월 5백정도는 되었었지요.
그러다가 아버지의 감성투자로 진짜 부자가 되는 수레바퀴가 삐거덕거리게 되지요. 수지 성복동에 추가로 산 8억짜리 50평 아파트의 중도금을 치루기 위해 5년간 모아둔 3억이 소진되었고 나머지 잔금을 치루기 위해서 2.5억에 산 광화문 오피스를 2010년에 4.5억 쯤에 매각합니다. 수익률이 80프로쯤이네요. 이러면서 늘어나던 월세 소득도 줄어듭니다. 제 사업을 위한 장소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아직 전 대기업 월급쟁이로 살게 됩니다.^^
그렇게 월세소득은 줄어들었지만 제 연봉이 좀 늘어나고 한달에 5백정도는 계속 저축을 합니다. 제 결혼을 대비한 종자돈이 또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모은돈으로 2016년에 전 결혼을 합니다.
2016년 이후에는 제 결혼을 계기로 부동산의 정리작업에 착수합니다. 상속이든 증여든 본격적으로 준비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피스텔의 년식이 10년을 훌쩍넘어 15년에 근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피스텔은 15년 넘으면 좀 별로입니다. 보일러나 수도, 에어컨등 막 고장나서 손이 많이가고 가격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많은 투자자 분들이 좋은 가격에 부동산을 매입하는것에는 신경을 씁니다. 임장도 다니고 정보를 많이 수집하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적절한 가격에 매도하는것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지요. 아마도 매도 시점이 정점으로 가고 있는 어깨나 목이 아니라 욕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목이나 어깨 이하의 매도이기 때문일것입니다. 어머니는 부동산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 약간의 이익을 포기하고 적당한 가격에 수월하게 매도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십니다. 다음 부동산을 사는 사람에게도 일정수준의 안전마진을 가져가게하는 일종의 배려라고도 하셨습니다.
어쨌든 저금리로 인해 오피스텔 가격이 오르던 2017년에 3개중 한개를 정리합니다. 2.5억쯤 받았습니다. 13년간 수익률은 150프로네요. 평균 6프로의 월세는 별도입니다.
2019년에 나머지 2개 중 하나를 2.25억으로 정리합니다. 수익률이 125프로네요.. 역시나 ㅜㅜ 15년 넘으면 오피스텔은 가격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올해에 10년을 속썩인 수지 성복동 50평 아파트도 7억 즈음에 매각합니다. 손해본 투자입니다. 매도 후 6개월 새 성복동 아파트는 본전인 8억 정도로 올랐습니다. 조금 더 오를걸 알고는 계셨으나 구매자의 안전마진과 생각보다 빠른 시간안에 이 지역의 거래가 얼어붙을 수도 있겠다는 정책적 위험성 그리고 20년에 내야할 보유세에서 그집을 팔면 3천만원의 절세가 가능한 것 때문에 서둘러 파셨지요.^^
이렇게 어머니는 부동산에 약 20년을 투자하셨습니다. 투자에 실패한 수지 아파트 건은 사실 아버지의 강력한 요구로 이루어진 매수였고 전 당시 죽어라 반대했었습니다. 심지어 제 이름으로 하자고 했었지만요. 결국 부모님 공동명의로 하셨고 전 안 받았습니다. 당시 제 생각은 떨어질 자산을 받을 이유가 없다 였고 그냥 현금으로 당시 8억을 받고 싶었습니다 ㅜㅜ
이글의 포인트는 이겁니다.
1. 오피스텔은 교통이 극도로 발달한 곳에 오피스는 항상 수요가 있을곳에 투자하라. 역에서 최대한 가까워야한다. 임사등록하고 신축으로 분양 받아 면세혜택 받고 10년정도 보유하고 매각한다.
2. 당시 시대의 거시경제의 흐름속에 맞는 투자에 집중해야한다. 세계화가 당시의 화두였다. 그래서 공항접근성, 여행업 주요 급지에 투자했다. (이젠 세계화가 거시경제의 흐름이 아니다. 세계는 폐쇄경제로 가고 있으니 유의해라)
3. 이런 긴 기간의 투자속에 빚을 거의 내지않고 레버리지 없이 투자하더라도 옳은 방식의 투자를 한다면 꽤 큰 부를 이룰수 있다. 그리고 이러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글은 아버지의 부동산 투자노트 아빠흑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글에 제 부모님이 100억대 순자산가가 되지 못한 슬픈 이유가 나열됩니다. ㅜㅜ
⬇️⬇️⬇️다음편에서 계속⬇️⬇️⬇️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