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14일 제 남자친구는 아르바이트 동료 5인과 회식을 했습니다.
가해자 측 주장에 의하면 술자리에서 언성을 높였다는 이유로 일행 중 한 명인 탁씨가 남자친구의 몸을 1회 걷어찼고, 뒷걸음질 치는 남자친구의 멱살을 양손으로 잡은 채 뒤로 밀쳐 넘어뜨렸다는 것입니다.
그 즉시 의식을 잃었고, 함께 있던 일행들은 남자친구를 일으켜 앉히는 등 상태를 확인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스팔트 바닥에 20분가량 눕혀놓고 모의를 한 뒤, 가해자중 1인이 모텔로가서 결제를 하고, 나머지 4인은 남자친구를 짐 들 듯 들어 모텔방으로 옮겼습니다.
가해자들은 모텔방에서 40분 가량의 시간을 가진 뒤, 모텔에서 나와 도주하였고, 다음날인 15일 오전 남자친구는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심지어 장례 둘째 날에 하였던 부검 전, 장례 첫째 날에 5인 모두 찾아와 폭행은 없었고, 스스로 넘어진 것을 본 것 같다며 하나같이 입을 맞춰 유가족에게 진실을 숨기고 기만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에 의하면 남자친구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물리적 충격에 의한 ‘왼쪽 후두부 경막외출혈, 오른쪽 전두엽 및 측두엽 하부 좌상, 왼쪽 후두부 골절 등의 외상성 뇌출혈>였습니다.
- 사건 발생 시각은 10월 14일 밤 11시 30분경
- 그들이 모텔방에서 나온 시각은 10월 15일 새벽 12시 45분
- 현장에 출동한 검안의가 추정한 사망 시각은 10월 15일 새벽 2-3시경
남자친구는 2-3시간가량 숨이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작년 초 군대를 전역하였고, 건강하고 지병도 없었던 23세 청년입니다.
그때 병원에 가서 치료만 받았더라도 충분히 살 수 있었습니다.
남자친구는 5명의 가해자들의 악한 생각으로 인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그들의 옆에서 홀로 죽어갔습니다.
주위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다 시간이 해결해줄거다 라고 이야기 하지만 저의 시간은 작년 10월 15일 그날 멈춰져있습다.
다행이도 제가 오빠에게 쓴 편지가 온라인 상에서 이슈화가 되어 청원도 올릴 수 있게 되어 오빠에게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오빠가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오빠를 위해서 네이트에 도움을 구해봅니다!
하이퍼링크 달아두었으니 바로 들어가셔서 청원
부탁드립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6250
+올라온 청원글입니다. 청원한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2만을 향해 달려가고있습니다. 20만명이 되어 제 남자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다섯명에게 엄벌이 내려지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한 사람당 네이버,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총 4개의 계정으로 4번 가능하니 청원 후 로그아웃 하시고 4번 꼭 부탁드려요!*
+추가적인 사진은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는 제가 직접 남자친구에게 쓴 편지입니다. 참고로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가글입니다
4일 전 올린 제 글을 30만명이 넘는 분들이 봐주셨고 2000명이 넘는 분들이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우선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올해 22살이 되었고 한 학교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하며 경찰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 덕분에 청원까지 오게되어 오빠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 가해자들이 엄벌을 받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주변사람들은 제가 사건에서 멀어져 제 마음을 돌볼 것을 원하지만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다는 것을 제가 알고 제가 못다한 것들에 대해 후회하고 싶지 않기에 더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각자 삶의 시간이 어찌 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양경찰이되어 시민의 가장 근처에서 도움을 주고싶다는 꿈을 가진 한 청년을 위해 1분씩만 투자해주셔서 청원 꼭 좀 부탁드립니다
-추가적인 사진은 저와 오빠의 사진이 방송에 나온 사진과 온라인 상에서 이슈화가 된 제가 오빠에게 쓴 편지입니다.
3달전 내 눈앞에 차갑게 식어있던 오빠의 몸을 만지며 신발도 신지 못하고 뛰쳐나가 119를 부르던 그 말.
출동한 소방관에게 제발 살여달라며 무릎 꿇고 빌었던 그 날.
오빠와 나 둘 뿐이던 매 세상은 무너졌어.
중학교 선배이던 오빠는 내 첫사랑이었지
간지선배라고 불릴만큼 멋있었던 오빠는 내 어린시절 연예인보다 더 멋진 사람이었어.
그렇게 나 혼자 오빠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고 겨울임에도 햇살이 유독 맑았던 어느날
수련외에서 우연히 오빠와 같은 버스에 탔고,
앞자리에 있던 오빠가
"너 너무 귀엽다" 라고 말해줬지
6년이 지난 지금도 난 그 한 마디를 잊지 못해.
그날 우리 놀이공원에서 같은 놀이기구 탄 거 기억나?
내가 잘 못내려오니 오빠가 나를 번쩍 안아 내려줬잖아
둘이 같이 사진도 찍고 기념품 가게를 지나가며 나한테 "풍선 사줄까?" 하고 물어도 봤지.
첫사랑인 오빠가 가는 귀여워해줘서 그래서 더 잊을 수가 없었던 날이었어.
그 후로 고등학생이 된 오빠와는 만날 길이 없었고, 우린 서로의 소식만을 알고 지냈어.
그렇게 끝나버린줄만 알았던 우리의 시간이 어른이 된 지금 다시 흐를 수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전날 밤 오빠가 꿈에 갑자기 나왔는데, 꿈에 나왔던 오빠가 정말 내 눈앞에 나타난거야.
우리 만나자마자 너무 반가워서 안을뻔한거 기억나?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오빠는 그날 훌쩍 커버린 나를 본 순간 반했다고 하더라.
나도 그떄는 부끄러워서 말 못했는데 나 그날 원래도 멋진 오빠가 더 멋진 어른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줘서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
그렇게 우린 연인이 되었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어있었어.
오빠는 늘 당연하다는 듯이 데이터를 할 때면 우리집 앞에서 나를 기다렸고, 집에 갈 땐 혹여 내가 위험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까지 기다려줬지.
오빠는 늘 자기자신보단 남을 위한 삶을 살았어.
어려우신 분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어.
비가 오던 날, 우리에게 우산이 하나밖에 없음에도 비를 맞고 가시는 할머니께 우산을 건낼만큼 마음씨가 착했어.
난 그런 오빠와 결혼하고 싶었어.
오빠가 가기 며칠전까지고, 오빠를 잃을 줄을 꿈에도 몰랐던 그날 마저도 나는 오빠와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너무너무 행복했더.
그렇게 행본만 했던 날들 이었어.
그런데 오빠는 이제 내 곁에 없어.
나한텐 너무나도 당연했던 오빠를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같은 공간 속에 있어도 보고싶었던 오빠가 이 세상에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해.
그 사건이 아니었더면 함께 했을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도 나는 심리치료를 받으로 다녀야 했고,
오빠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사무치게 미워하며 엄벌탄원서를 받으러 다녀야했으며
난생처음 가본 차디찬 추모공원에 걸린 오빠사진을 보고 목놓아 울었어야 했어.
내 5년의 짝사랑이 이제야 사랑이 되었는데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오빠를 보내버린 난 슬픔을 달랠 틈도 없이 사건해결에 뛰어들었고 가해자들의 그 추악함을 마주했어.
가해자들 다섯명은 오빠의 알바동료였어.
오빠는 밤 시간대가 무섭다고 한 알바동료를 위해 알바시간을 바꿔줄 정도로 그들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그 동료들로, 아니 살인자들로 인해 알바회식에 간다며 일찍 집에 데려다주던 오빠의 모습을 끝으로 오빠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어.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기 전, 가해자들은 장례식에 와 폭력은 일체 없었고 자기 혼자 머리를 부딪힌 것 같다며 거짓말로 유가족을 우롱했지만 CCTV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어.
주가해자는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하다가 영상이 밝혀지자 그제서야 폭력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같이 한 회식자리에서 오빠가 "언성이 높아져 때렸고, 잠을 자는 것 같길래 모텔에 재웠다"라고 최종 진술했지만 가게사람들은 오빠의 테이블을 기억했고 단 한번도 언성이 높아진 적 없다고 했어.
또한 영상 속 오빠는 술 자리를 끝내고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타려고 했던 것 같았어.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가려는 오빠를 잡고 일방적으로 폭행을 시작했어.
단 한번도 누군가와 싸우거나 다퉈본 적 없던 오빠는 싸우지 않고 계속 가만히 있더라.
한 대라도 때리기 제발 한 대라고 떄리지..
영상을 보며 흐르는 눈물과 분노는 참을 수 없이 커졌어.
심지어 동료들 모두가 오빠가 쓰러진 것을 봤고, 의식이 없음 또한 인지했지만 오빠는 의식을 잃어가는데 그 사람들은 오빨 그저 눕혀놓고 어쩌지 어쩌지하며 모의를 하고 있더라.
그러고 나선 그들은 오빠를 짐짝 들 듯 옮겼고 그러는 와중에도 오빠를 떨어뜨리더라.
그래서였을까 오빠의 머리 상처가 뒤쪽 뿐만이 아니라 측면에도 그렇게 심했던 건..
단 한번도 연락을 소홀히 하지 않던 오빠였기에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자 이상함을 느낀 내가 오빠에게 수십통의 전화를 했지만, 오빠폰을 가지고 있었던 가해자 중 한명은 의도적으로 그 전활 받지 않았어.
그들이 그 전화만 받았어도 오빠는 지금쯤 내 곁이 있을까?
그 순간 내가 달려나가 오빠를 마주했다면, 오빠를 병원에 데려갈 수라도 있었더라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지만 난 하루에도 수백번씩 이런 만약을 생각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온 연락 한 통..
그 연락을 받고 뛰어간 그곳에서 난 이미 숨이 멎어 온 몸이 굳은 오빠를 마주했어.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그떄가 생각나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는데, 너네들은 어쩜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진심어린 사과 한 번 하지 않은 가해자들이, 첫 재판이 열리기 하루 전 날이 되어서야 사과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더라.
오빠에게 미안해서가 아닌, 어떤 큰 벌을 받게 될 지가 무서웠던거겠지?
3월 5일 또 한번의 재판이 열려.
그때는 이 사건이 더 이슈화되어 오빠가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수 있게 다섯명 모두 응당한 벌을 받으면 좋겠어..
내게는 전부였던 그리고 너무 사랑했던 우리 오빠.
힘들고 어려운건 이제 내가 다 할테니 오빠는 따뜻한 그 곳에서 먼저 행복해주라.
나도 가해자들이 마땅한 벌을 받으면, 그 때는 꼭 행복해지겠다고 약속할게.
나 많이 사랑해주고 내가 오빠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천사가 내 곁에 머물다 간 것 같아.
평생 오빠 기억할게.
우리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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