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친 이야기입니다.
헤어진 지 3년 정도 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죽 솔로...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계속 솔로인가 싶기도 한데 후회는 않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전혀 후회 안 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그 식탐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나서 아냐 잘 한 거야 마음 다잡아요.
소개팅으로 만났고 처음 1년 정도는 잘 지냈어요.
아니 몇 개월 뒤 조짐은 있었습니다.
소소한 거에요.
영화 가면 팝콘을 한 주먹씩 쥐어서 먹고 나초도 한꺼번에 몇 개씩 겹쳐 입에 쑤셔넣고 콜라도 혼자 다 마시고 어쩌다 제가 먹을라치면 얼음 녹은 물만 빨대로 빨아야 하는 상황.
영화 볼 때 뭐 먹는 스타일이 아닌 지라 그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만나서 같이 밥 먹을 때 짜증나는 상황이 자꾸 나오는 겁니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생각해보면 서로 잘 보이려고 하는 때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엔 지 몫의 음식을 먼저 싹 먹어치우고 혼자 심심해서 안절부절 못하거나 스마트폰을 한다거나 하니까 몰랐는데,
어느 날은 "나 한 입 먹으면 안 돼?"
이러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그 한 입이 거의 1/3을 덜어가는 수준.
그 때는 와 되게 배고팠구나 남자들은 정말 많이 먹는다 이러고 말았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씨뎅 봉인해제 레리즈였네요.
치킨 먹으면 닭다리 싹쓸이. 저야 가슴살 좋아하니까 그것도 상관없긴 했어요.
대신 전 가슴살을 좋아해서 서로 좋아하는 부위 안 겹쳐서 잘 됐다 생각했는데 ㅋㅋㅋ
얘가 제가 닭다리 안 먹는 걸 아니까 이젠 처음부터 가슴살을 집어들고 먹더라구요. 진짜 황당해서.
자긴 살 많은 부위도 좋다나 뭐라나...
그러고 닭가슴살 다 먹어치운 뒤에야 지 앞에 놓아 둔 닭다리를 먹습니다.
더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원피스 흉내 낸다고 양손에 들고 한 입씩 먹습니다!
한 번 제가 닭다리를 먹은 적이 있어요.
닭가슴살 그 놈이 다 먹어치워서 먹을 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담부터는 흉내낸답시고 양손에 하나씩 ㅎㅎㅎ
그러면서 "나 어때? 루피 같아?" 이러면서 만화고기 어쩌구 이러고 먹어요. 루피가 뭐죠? 돼지에요?
제가 한 조각 먹을 때 두 세 조각을 먹어치워요.
몇 번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혼자 2/3을 처먹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ㅇㅇ이는 너무 조금 먹어 큰일이네 이 g랄 ㅎㅎㅎ 너 때문에 조금밖에 못 먹는 거에요 써글아.
이 때도 그냥 넘어갔어요.
좀 황당하긴 했지만 먹을 걸로 뭐라 하기도 좀 그런 것 같고, 그런 거 신경쓰는 제가 이상한 것 같아서.
처음엔 묻는 시늉이라도 하더니 이게 편해지니까 말도 없이 뺏어먹어요.
지 거 몇 분만에 후다닥 먹어치우고 야금야금 계속 내 걸 덜어가요. 말도 참 이쁘게 하죠.
우리 ㅇㅇ이는 조금 먹으니까 내가 도와줄게.
먹는 거 남기면 음식물 쓰레기가 어쩌고 저쩌고 가난한 나라 애들이 어쩌고 저쩌고.
야 내가 먹다 남기면 그게 음식물 쓰레기지 먹고 있는 건 음식이야.
골뱅이소면을 시켜먹으면 골뱅이랑 소면 싹 다 건져먹고 해맑게 웃으면서 다 먹으래요.
뭘? 풀떼기?스파게티 양쪽 하나씩 시키고 사이드로 피자시키면 피자부터 먹어치웁니다.
한 조각 먹고 있을 때 정말 남은 거 다 쓸어넣고 지 스파게티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거 맛보고 싶다고 지꺼 묻은 포크로 내 스파게티 휘저어대서 양껏 둘둘 말아 가져가고...
절로 다이어트 해서 참 좋았어요 이 개새야.
한 번은 저도 좀 짜증이 나서 그렇게 시킨 뒤 아예 저도 피자를 처음부터 반 따로 뚝 잘라서 제 접시에 가져다 놓고 먹었어요.
그랬더니 그러면 식어서 맛없다고 안절부절.
그러면서 가져가려 하길래 내가 정색하고 냅둬 내가 다 먹을 거야 이랬는데 세상 억울한 얼굴로 밥을 먹는데 진짜 입맛 뚝 떨어져요.
오기로 다 먹었습니다.
무리해서 못 먹을 양은 아니니까. 저도 미쳤던 같아요.
중식집 가면 제 몫의 식사 냅두고 요리부터 허겁지겁 내가 먹을까봐 싹 쓸어버리고.
전 진짜 요리는 맛보기 수준으로 먹게 되고.
아구찜 먹으러가면 지는 살 발라먹고 나는 콩나물 ㅎㅎㅎ
내가 베지터리언이었나?
갈치조림 먹으러 가면 갈치 싹 발라먹고 난 무나 감자를 찍어 먹고 있죠.
쌀국수 먹으러 가면 사이드로 시킨 스프링롤 짜조 닭다리 같은 걸 다 퍼 먹어요.
반씩 먹는 게 억울한 건지 기어이 한 개 고 두 개고 더 먹어요.
심지어 화장실 갔다온 적 있는데 그 사이에 사이드메뉴를 난 구경도 못 했는데 다 먹어치움.
스테이크 썰러 가면 지껀 귀신같이 먹어치우고 내 거 반 잘라가고.
커피 마시러 가면 케이크며 타르트며 다 지가 먹어요.
먹는 건 상관없는데 제가 보기엔 작정하고 지저분하게 먹어요.
포크로 한 쪽 구석에서부터 먹으면 되는 걸 여기저기 푹푹 떠 먹고 쑤셔놓고.
분명 처음엔 안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지가 그렇게 하면 더러워서 제가 인상쓰고 커피만 마시니까 그렇게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은, 내가 다 먹어줄게. 남기면 아깝잖아.
고기 먹으러 가면 굽는 족족 익지도 않는 고기를 지 입에 처넣고, 심지어 아예 지쪽 불판에다가 고기 구우면서 그 고기를 지 접시에 쌓아두고 먹어요. 참 치사스럽죠.
그러면서 배부르니까 냉면은 맛만 보겠느니 꼭 하나만 시켜서 고기 계란 오이 배를 면 한 뭉텅이 싸잡아서 후루룩거리며 먹어요.
냉면은 내가 시킨 건데 왜 내가 작은 접시에 한입거리 양의 냉면을 덜어먹어야 하는 걸까요.
설렁탕 먹으면 지는 꼭 밥 시키고 내가 시킨 떡만둣국의 떡과 만두를 죄다 건져 처먹습니다.
따로 시켜먹으라 그래도 돈 아깝게 왜 그러냐고 조금만 맛 보는 거라고 기어이 제 떡과 만두를 가져가요.
가져가다 만두 떨어지고 떡 떨어지고, 만두 피 찢겨져서 제 만둣국에 만두 속 둥둥 떠다니고... 진짜 역겨워요.
계속 이러니까 저도 점점 치사스러워져 가요.
식사를 즐기며 먹는 게 아니라 뺏기지 않으려고 경쟁하게 되더라구요.
저 원래 빨리 먹는 편 아닌데 음식 나오면 뺏기기 전에 먹으려고 양 딱 나누고 허걱대며 먹고...
계속 그러다 보니 소화불량에 위염,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
하 진짜. 같이 짐승 되는 느낌?
진짜 먹는 것 빼고는 다 멀쩡해요.
배려도 잘 하고.
근데 사람이 이게 꼬이니까 그렇게 배려 잘 하고 상냥한 것도 먹을 거 다 뺏어먹는 거 핑계대려고 저런 건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저도 참 어이없죠.
결정타는 언제 저녁 먹으러 갈 때였어요.
나는 봉골레를 시키고 그 놈은 토마토소스 베이스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늘 하던대로 지 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당연하다는 듯이 휘휘 저어서 덜어가는 거에요 ㅎㅎㅎ
근데 그날 따라 너무 그게 역겨운 거에요.
제 스파게티에 그 놈 토마토 소스가 둥둥 떠 있는 것도,
반도 못 먹은 스파게티가 갑자기 다 사라지고 마늘 몇 조각 조개 껍질 남은 게 갑자기 그렇게 꼴 보기 싫고 머릿 속에서 뭐가 줄이 뚝 끊기는 느낌이더라구요.
이성의 끈이 끊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제 봉골레 접시 들어서 그 녀석 접시에 엎어버렸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이 놈은 "아 씨 뭐하는 거야!" 이러고 질겁하고 제 입에서는 욕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너나 다 처먹어 이 c**끼야.
너만 입이고 내 입은 주둥이니? 너 거지새끼냐?" 이라고 버럭 하니까 얜 순간 멍해져서 쳐다보고.
서빙하던 직원 분들도 쳐다보고 다른 테이블도 쳐다보고.
"그냥 너 혼자 두 그릇 다 쳐드세요.
내가 먹는 게 그렇게 아까워 죽으면서 왜 나랑 만나냐? 왜 남의 걸 뺏어먹냐고 거지새끼야. c발 드러워서 같이 못 먹겠네." 이러면서 평소 안 하던 욕이 다 튀어나오더라구요.
사실 그 욕들이 평소 그 놈이랑 같이 밥 먹을 때마다 머리 속에서 생각했던 것들이죠.
그러고 나왔습니다.
나올 때 카운터 분에게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식탁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이러고.
뭐 따라나오거나 붙잡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찌나 열이 받는지 저도 제풀에 계속 혼자 욕이 막 튀어나옵니다. 혼잣말로. 가슴에 불이 나더라구요.
그러면서 집에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너 미쳤어?
쪽팔리게뭣 때문에 이러는 건데?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려.
조금 맛만 본 거 가지고 gr이네.
야 헤어져 연락하면 죽인다 등등 별별 카톡이 오고,
그냥 읽씹했습니다. 상대조차 하기 싫었어요.
이 놈도 웃긴 게 지 풀에 카톡으로 온갖 욕을 하고 나도 너 같은 년 싫네 뭐네 개난리 치다가 바로 다음 날에 내가 먹은 게 그렇게 싫었냐 생각해 보니 나도 잘못한 것 같다 앞으로는 허락받고 먹겠다(이 말에 진찌 실소가 터져나오더라구요),
그래도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한 건 잘못이다 내가 좀 많이 먹어 그런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무슨 정신분열인 줄.
사과했다가 변명했다가 내 잘못이랬다가.
그냥 다 씹었습니다. 뭐라 말해 줄 가치조차 못 느꼈어요.
저라고 말 안 하겠어요?
처음엔 그래 악의없이 식사예절이 없는 거 뿐이다 싶어서 고쳐줘야겠다 계속 이야기했죠.
말로만 응응 하는 건 차라리 다행이고 나보고 정 없다 뭐다..
결정적인 건 말로만 알아듣는 척을 하고 전혀 안 바뀌어요.
애인끼리 나눠먹는 게 뭐 그리 이상하냐면서.
남들 다 그렇게 한대요. 나눠먹긴 개뿔.
지 혼자 입에 다 처넣고, 혹여나 내가 더 먹을까봐 전전긍긍 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친구들한텐 물론 다 이야기했죠.
그 놈 식탐 때문에 진짜 드러워서 만나기 싫다고.
어차피 서로 친구들도 엮여 있어서 이야기하긴 해야 했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안 만난다.
친구들 의견은 반반이었습니다.
뭐 그 놈 친구들은 그래도 내가 잘못했네 뭐네 인정머리 없네 이런 거고 제 친구들은 제 쪽을 더 공감해주며 잘 헤어졌다 이러고.
그 와중에도 그 놈은 지 잘못은 쏙 빼서 내가 레스토랑에서 접시 뒤엎고 성질내며 헤어졌다 이러고.
그러다가도 잘못했다 자기가 노력하겠다 이러고.
뭐가 뭔지. 얘가 진짜 웃긴 게 남들 있을 땐 잘 안 그래요.
아 물론 욕심을 부리긴 합니다.
맛있는 안주 있으면 지가 많이 먹고 남들이 못 먹게 아예 첨부터 왕창 덜어서 가져다놓거나 해요.
근데 제 앞에서처럼 티나겐 안 합니다.
그냥 좀 많이 먹는구나 이 정도로, 남의 걸 뺏어먹는 수준은 아닌데 제 앞에서는 저러더라구요.
어쨌든 그렇게 헤어지고, 그 놈 때문에 알게 된 친구들과도 다 인연 끊겼죠.
정말 식탐 많은 사람이랑은 같이 밥 못 먹어요.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솔직히 연애할 때 먹는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정이 떨어지는지.
생각보다 식탐 부리는 이유로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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