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아이디로 작성합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평범한 집안의 2남 중 장남으로 지방 출신입니다.
서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면서 처음 집을 떠났고, 서울에서 근무하고 또 결혼까지 하면서 저는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와이프는 근무조건이 비교적 비안정적인 편이라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퇴사하고 싶어하기에 와이프의 뜻을 존중해 와이프가 전업주부로 살것을 의논하던 중에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와이프 직업특성상 임신하면 출산시까지 무급휴직이 주어지기에 우선 휴직을 들어갔고, 현재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중입니다.
우리 첫아이 임신 소식에 양가 부모님 다 기뻐하셨고 저도 가능한 모든걸 와이프에게 맞추려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집안일 모든걸 제가 합니다. 청소,빨래,요리 모든것을요.
어릴때부터 어머니가 앞으로는 남자도 이런거 하며 살아야한다며 저희 형제에게 집안일을 가르치셨고 요리도 틈틈히 가르쳐주셨기에 저와 제 동생은 웬만한 가정주부만큼의 살림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취 때부터 집 하나는 말끔히 정돈하며 살았고 거의 집에서 밥해먹던 버릇도 있구요.
이런게 다 사랑하는 가족 위해 만들어진 습관이라 여기며 와이프 보살피는데 집중했습니다.
와이프는 입덧이 심하진 않았지만 기력이 없어보여 제가 손수 곰국도 고아 먹이고, 좋아하는 이태리 요리는 요리책을 뒤져가며 해먹였습니다.
임신선물 요구하기에 갖고싶어하던 시계 큰맘먹고 질렀습니다.
16주 지나니 이제 안정기라며 친정부모님과 여행 떠나고싶다고 하기에 원하던 하와이 6박으로 제가 끊어줬습니다.
시계값, 하와이여행비로만 2천만원이 넘게 들었지만 제 연봉이 그 정도는 감당할수있겠다 싶어 해주었습니다.
연봉이 제 나이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지만 미래를 대비해 저축을 많이 하고 있어 와이프가 좀 답답해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임신 중에는 해달라는것 마음이든 돈이든 어느정도는 해주고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이 전혀 인정받지 못하다는걸 깨달은게 지난 주말입니다.
저희는 결혼한지 1년쯤 되었는데 신혼살림을 차린 저희 아파트 입주 집들이때 저희 부모님과 동생 딱 한번 다녀간것 외에는 집에 부모님 모신 적이 없습니다.
와이프는 주위에서 안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는지 시골 시부모님 아들집 온다고 자고 가는거 싫다며 중간역할 똑바로 하라는 말도 했었고, 연락없이 찾아오는것, 살림 간섭 어느것도 용납 못한다고도 했습니다. 표현이 다소 거칠뿐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결혼한 아들내외집 자주 드나드는거 아니라며 부모님께서 이해해주셨기 때문에 와이프 걱정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명절과 생신 때 우리가 당일로 지방 다녀온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아직 장가 안간 둘째아들이 집에 있고 외롭지는 않으실거같아 큰 걱정은 안하고 있었습니다.
한솥 끓인 곰국을 얼려가지고는 이틀 뒤인 지난 주말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하셨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되려니 그런건지 미리 연락하는걸 깜빡하여 버스 안에서라도 저에게 연락하려고 주머니를 뒤지니 폰을 집에 두고 출발하셨던 겁니다.
시외버스는 이미 달리고 있었고 어쩔수없이 저희 집에 곰국만 놓고 당일 다시 돌아오실거라 생각하고 그냥 계속 가셨답니다.
폰은 두고오셨지만 가족생일, 가족들연락처, 주소 등등을 적어놓은 수첩은 품에 있어서 택시타고 주소 불러서 집은 잘 찾아가셨답니다.
저는 그때 하필 급한 일로 주말출근을 한 상태였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는데 신경질적인 목소리였습니다.
이런일 없게 해달라고 했지? 하며 마구 화를 내는데 처음엔 어안이 벙벙해서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차근차근 달래가며 들어보니 안그래도 컨디션 안좋은 날이라 집에서 꼼짝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벨 눌러서 보니 어머니더라.
연락도 없이 불쑥 무슨 이런 일이 있냐 예의가 없다 등등 너무 화를 내기에 일단 사과하고 진정시키고 어머니 좀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만해도 저는 자초지종을 모르니 무작정 연락없이 놀러오신걸로만 생각하고 어머니께 쓴소리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안계시답니다.
이런 일 한번 넘어가면 계속 반복되는 법이라고
문을 안열어줬답니다.
그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시외버스로 4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온 어른을 문전박대를 했다는 거냐 묻자
와이프는 더 얘기하기 싫다고 끊어버렸고
저는 어머니폰으로 전화했습니다.
집에 계시던 아버지가 받으셨고
요즘 깜빡깜빡하더니 폰을 깜빡하고 나갔다며,
이틀전에 밤새 곰국 끓여서 냉동실 집어넣고 얼자마자 싸서 새벽같이 버스터미널 나가셨다구요.
전달하고 애들 얼굴이나 보고 바로 내려올거니까
저녁은 집에 와서 먹을거라고 기다리라까지 하셨다네요.
아버지랑 통화하고 나니 상황판단이 되었고 마음이 너무 아파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잠시뒤 회사입구 인포에서 가족분이 방문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급히 내려가보니 핑크색 보자기 꾸러미를 두개나 들고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니가 준 명함에 적힌 주소 찾아왔다 하시며 반가워하시는데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왜 연락도 없이 와서 고생하시냐 버럭 소리가 나왔습니다.
미안하다고 내가 장 보러가면서 전화해야지 하다가 까먹고, 다 끓이면 전화해야지 하다가 까먹고, 폰까지 두고 오고 내가 늙었나보다 하며 웃으시더군요.
하나는 곰국 얼린건데 1인분씩 얼린거라고 잘 해먹이라 하시고, 하나는 묵은지랑 젓갈이랑 장아찌랑 서울에서 먹기 힘든거 싸오셨다고 두고두고 반찬 해먹으라십니다.
집에서 무슨 일 있었냐 물어도
며느리 흉보는게 싫으신지 한사코 아무말도 안하시고
아버지 밥해주러 가야된다 하시며 차 한잔도 마다하시고 부랴부랴 다시 택시타고 터미널로 가시겠답니다.
고집을 못꺾어 결국 택시잡아 보내드리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시 사무실 올라가
급한 사무 정신없이 처리하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잔뜩 화가 나 있더군요.
덕분에 어머니께 못들었던 상황을 와이프에게 들었습니다.
입구 벨을 누르기에 화면 보고 집에 없는척 했다가
한참뒤에 경비 아저씨한테 인터폰이 와서 받았답니다.
반찬이랑 국을 맡기셨는데 상할거같아서 전화했다기에
그냥 거기 두세요, 남편이 회사갔는데 퇴근해서 버리든말든 할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걸 고스란히 싸들고 회사에 오신걸 보니 아무래도 어머니는 그 경비아저씨와의 통화 중에 곁에 계셨던거 같습니다.
와이프는 자기 잘못은 없다고 다 어머니 잘못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아들 집이라도 예의가 있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건 받아들일수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 뭐 때문에 오신건지 설명을 해도 전후사정 들을거없고 결과적으로 어머니 잘못이니 자기는 잘못한거 없다고 합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결혼상대를 잘못 택했다는 것을요.
임신중 예민한 상태, 이해합니다.
갑작스런 시어머니 방문에 불쾌한 며느리 심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오신분 일단 집안에 모시고 차라도 한잔 드린뒤에,
나중에 저한테 화풀이하고, 저한테 단도리시키는,
그런 아량, 이해심조차 없는 여자인줄 몰랐습니다.
내 부모에게 잘하길 바라는 만큼 배우자 부모에게 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저는 장인어른,장모님께 최선을 다했습니다.
두분은 저희집에 수십번 오셨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요리하고, 과일깎고, 설거지했습니다.
딸이랑 더 시간 많이 가지라고 제가 일어나 움직였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모님은 한번을 안오셨지만
멀어서 그렇지, 나중에 모시지 뭐 하고 넘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불효자고 못난 놈입니다.
이미 와이프는 배가 불러오고 있고
제 자식이 자라고 있는데
이혼하고싶어 미치겠습니다.
저런 여자가 내 아이의 어머니로서 교육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와이프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냉정한 태도를 보이자 울고불고 친정에 전화하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장모님이 전화 바꾸라더니 좀 만나자하시는데 제 마음이 정리된 뒤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와이프는 자기 부모 무시한다며 짐싸들고 어젯밤 친정으로 갔습니다.
그 뒤 장인어른께 몇통의 전화가 오고, 와이프 친오빠에게 몇통의 전화가 왔는데 다 피했습니다.
오늘은 연차를 내고 하루종일 혼자 누워있었습니다.
여기는 결혼한 많은 여성분들의 커뮤니티로 알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의견을 듣고싶어 익명으로 글을 남깁니다.
와이프가 글을 지울수도 있지만
똑똑히 보라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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