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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썰BOX/[알쓸투자]썰

[부동산 스터디] 이런 소리만 걸러도 인생에서 잃진 않아요 (by.좋다네)

by 이야기NOW 2020.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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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게 뭔지 아니.

무식하게 살아야 할 가정에서

유식해지는 거야.

나의 어머니는 가방끈이 짧다.

그녀는 영특하여

중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지만,

졸업식 날에

네 오빠들 대학 보내기 빠듯하여

너는 지원해주기 어려울 것 같으니

어차피 계속하지 못할 공부,

지금 그만두어도 된다고

머뭇거리며 말하는 부모의 말을 들었다.

정 공부하고 싶다면,

어차피 돈 벌거

상업여고는 어떠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굳이 당시 전국구로 유명했던 모여고를

수석으로 입학한 것은,

아마 그녀 인생 최대의 반항이 아니었을까.

본래 성정이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는데

재학 3년 내내 그녀는 화석처럼 조용하고

무덤덤한, 없는듯한 그런 사람이었고

그녀의 성적표에

전교 석차 1이 대부분 박혀있든 말든

이변없이 취업을 하였다.

그녀는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게 뭔지 아니.

무식하게 살아야 할 가정에서

유식해지는 거야.

눈이 감겨 있으면 덤덤히 살 인생을

어쩌다가 신이 주신 명민한 지성을 갖게 되어

내가 있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눈이 떠서 보이는 것.

그것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갈가리 찢는건 없단다.

눈은 떴는데, 난 그대로거든.

내가 어디 있는지 더 명확하게 보일 뿐이거든.

눈을 똑바로 뜨고 내가 늪으로 빠지는걸 보는 것.

도저히 대학에 대한 갈증을 버릴 수 없어

취업 후 방송 통신 대학에 합격했지만,

합격 통지서가 회사로 왔고

당시엔 하늘같았던 주임이 그것을 먼저 뜯고는

노발대발하며

당장 회사를 그만두던지

공부를 하든지 하라고 몰아세웠다.

그녀에게 무슨 선택지가 있었겠는가?

그녀는 또 이변없이 공부의 기회를 놓았다.

평범한 남자를 만나,

그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그 남자가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것을 도우며

나름 자수성가라고 할 만한 것을 이루었지만

자식들 서류 중

부모의 최종학력란을 채울때마다

그녀는 울었다.

얼마 전,

지역 봉사 역할을 끝마치고

부쩍 우울해하는 어머니에게

내가 툭 던지듯 건넸다.

엄마, 학교를 다시 가는건 어때요?

​(*어머니는 자식교육을 마친후

8년에 걸쳐 방통대 과정을 마쳤다)

감히 내가 대학원에?

손사레를 치던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기다려보라고 말하곤

그날로 나는 어머니의 모든 졸업증명서를 떼고

어머니의 관심분야를 근거로

서울의 모든 대학원을 뒤져서 리스트업하고

그 중 다시 합격 가능성이 있는 곳을 솎고

모든 서류와, 지원서 등을 어머니와 작성하고

모의 인터뷰를 실시하고

면접 당일 복장을 내가 정하고

제스처를 크리틱하고 피드백을 준 후

어머니를 몇몇 학교에 보냈다.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좀이라도 더 좋은 학교에 보내려던 네가

이젠 나를 보내려고 내가 하던 것을 하네?

그녀는 소녀처럼 들떠서

후후, 웃었다.

나는 그녀와 다르게 가방끈이 길다.

수없이 겪은 대학 관련 나의 경험과

지금까지의 모든 커리어 경험을 짜내어

나의 혼과 그녀의 원(願)을 합쳐

우리는 글자 하나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는 대학원에 합격했다.

그녀 인생에서

그녀 자신의 유일한 이변이지 않을까.


가끔 주변에서 또는 카페에서

자녀의 교육에 돈 쓰느니

그 돈으로 빌딩을 사주는게 낫다느니

학군이 다 무의미하다느니

그런 소리를 듣는다.

뭐 이상한 일도 아니다.

교육감이란 사람이,

"나는 용기가 없어서

자식을 특목고 보내서 주류로 키웠지만

당신들만은 '용기를 내어'달라"고

하는 판국에.

 

엘리트 교육은 필요없다는

학군은 무용지물이라는

헛소리에

인생 휘둘리지 마라

 

다시 한번 말한다.

그건 '헛소리'다.

그렇게 말하는 건,

학습 인풋이 금전적 성과로 치환되는

직업 교육(Vocational training)과

교육(Education) 또는 배움(Learning)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 갔다고, 로스쿨 나왔다고

돈을 많이 번다는 보장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교육이라는 테마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즉, 내 아이를 열심히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에 보내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과

- 그래서 자연히 고소득직군에 속하게 되는 것과 -

돈을 많이 버는 것과는

논리적 연결고리가 없다는 말이다.

비슷하게 비논리적인 말로,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가 있다.

지적 수준 이전에 인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높은 수준의 교육이 무용지물이라는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공부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른 내용은

존 듀이부터 대치동 입시학원 강사까지

각각 다를 것이기에

그것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만큼,

그 잘난 공부로 좋은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그만큼 돈은 벌었냐 라고

성과 지표를 들이대는 것도 어불성설이란 점이다.

애초 목적이 돈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러브호텔을 차리면 된다.

현금으로 돈이 꾸준히 들어온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굳이 교육을 받고

또 자식에게 희생을 감수하고 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람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또한 부모로서

자식이 기꺼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나를 뛰어넘고, 나보다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산을 물려받지 않은 사람이

유일하게 현실을 자각하고,

처절한 현실 감각을 바탕으로 변화를 일으킬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지성이기 때문이다.

그 지성은 지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며

교육을 통해 무한으로 계발될 수 있는 것임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교육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런 본능을 무시하고

'나는 받았지만' 너는 안 받아도 돼,

'받은 내'가 널 돌봐줄 테니까, 공평하게.

라는 말을 들었다면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임대차 3법이나, 종부세나,

그외 기타 그 어떤 정치적 이슈보다

우리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분노해야 한다.

우리 인생을 지금 이대로 이변없이 흐르게 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서 말이다.


교육이 꼭 학군은 아니잖아요?

그런 소릴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특히 부동산에서

소득과 학군이 괴리가 있는 것은

다시 말해

꼭 소득 최고 지역이

학군 최고 지역이 아닌 것은

굉장히 흥미있는 연구 주제라고 생각되지만

일단 나의 일차적 생각은

한국이 지금까지 경제 구조적으로

완전한 선진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땅이 작고,

전세계적으로 학구열이 높다.

따라서 소득이 적은 가구여도

자식만큼은 잘되게 하기 위한 수요를

학원 사업이 받아내면서

독특한 지형을 일군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게 이른바 '학군지'이지 않을까.

흔히들 영미 교육은 굉장히 자유롭고

놀며 토론하는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외국인 입장에서

그 정도 수준의 영/미만 보아서 그런 것이고

실제 미국에서 열심히 시키는 사람들은

단순히 엄마가 열성인 것이 아니라

그냥 유치원때부터 별도 코스로 키워진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학업에 대한 수요는

수요자의 수준에 따라 특화되어 더 잔인하다.

무슨 말이냐하면,

본인이 좋은 교육을 받아본 사람이

자녀에게 적정 시기에 최고의 교육이 뭔지

즉 '적절한 수요'를 가지기 쉽다는 말이다.

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대표적 영역이다.

100프로라고 할 수 없지만,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대개 소득이 높으면 교육도 많이 시킨다.

그 '선진국'이 무서운 것은

덜 배운 사람이 더 배운 사람을

시기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주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며

덜 배운 부모는 자식을 배우게 할 수요를

구체적으로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부자 형님은 그렇게 안하던데요,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이 본 부자 형님은

넓게 보면 그렇게 부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사실 한국에선 돈이 아무리 많아도

받을 수 있는 교육이나 소비의 최고 수준이

크게 높지 않아서

진짜 부자들은 한국에 잘 있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의 학군지들이 그 명맥을 유지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제 한국에서도 곧 지역의 소득 수준과

학군 수요 또는 수준이 어느 정도 같이 가겠구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정부는 의도하고 있다.

특화 목적의 엘리트 고등학교가 없어지고

대학의 예산은 교육부에 달려있으며

시험을 잘 봐서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각종 전문 직종에 대해

시험 외의 factor를 두어 진입 비율을 손댄다.

즉 '공부를 잘해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없어지고 있다.

전쟁 직후 세대들, 이른바 '틀딱 세대'들때처럼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수준 높은 인력을

빠르고 최대한 많이 공급할 필요가 없고

이제는 고착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떻게 한정된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해진 시대.

이것은 보수 세력이었어도 일정부분

저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겠지만

이 정권은 그것을 '의도하고 있다'.

학군, 이란 것이 내포했던 그 수많은 의미.

새벽마다 일어나서 내 아침밥을 차려내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에 태만한 것은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에 대한 죄악이라고

네가 지금 누린 만큼 나중엔 세상에 되갚아야 한다,

시험 성적이 아니라 기회를 얘기했던 어머니와

어느 날 만취하여 집에 돌아와서

소파에 몸을 기대어 곯아떨어지기 직전

"회사에 내 몸과 영혼을 다 파는구나"

중얼거리던 아버지의 잊을 수 없는 목소리와

새벽 비척대며 일어났다가 공부하고 있는 날 보고

씩 웃고는 조용히 문을 닫던 아버지의 얼굴

부모가 되어보니 느껴진 처절한 희생에

"그렇게까지 가르치셨는데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죄송해요"

웃으며 한 내 말에

열심히 배웠기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인생에서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낸 최선의 습관,

그것이면 됐지 무엇을 바랐겠니

그 돈으로 빌딩을 세운들 그게 무엇이겠니

허허 웃으며 늙은 부모가 대답한다.

교육은,

부모가 줄 수 있는 궁극의 사치재다.

어쩌면, 내 아이는 커서

'학군'의 의미를 알지 못할 수도 있겠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내 인생의 가능성 자체를 잃을 수 있는 ​소리만 걸러도

우린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헛소리가 있는데

그건 분량조절 실패로 다음에..



[출처] 이런 소리만 걸러도 인생에서 잃진 않아요 (부동산 스터디') | 작성자 좋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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